앞서 탄소중립이라는 말을 풀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도 여전히 남는 물음이 있을 겁니다 — 탄소가 대체 뭐길래 온 세상이 이 한 원소를 두고 씨름하는가. 오늘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려 합니다. 다만 어렵게 가지는 않겠습니다. 이야기는 손 네 개에서 시작합니다.
손이 네 개인 원소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소라는 기본 재료로 되어 있고, 원소들은 서로 손을 잡아 물질을 이룹니다. 그런데 원소마다 잡을 수 있는 손의 개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수소는 한 개, 산소는 두 개, 질소는 세 개. 그리고 탄소는 네 개입니다.
한 개 차이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손이 네 개라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합니다. 하나에 네 개까지 다른 원자를 붙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탄소끼리도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뒤엣것이 결정적입니다. 탄소는 자기들끼리 사슬처럼 길게, 고리처럼 둥글게, 가지처럼 뻗어 나가며 끝없이 이어 붙을 수 있습니다.
레고 블록 중에 유일하게 사방으로 연결되는 블록이 하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블록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 지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알려진 화합물 가운데 1,000만 가지가 넘는 것이 탄소 화합물입니다. 나머지 원소를 전부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다이아몬드와 연필심은 같은 것입니다
탄소가 이어 붙는 방식이 자유롭다는 말에는 재미있는 뒷면이 있습니다. 똑같은 탄소 원자만 가지고도, 배열이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물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재료는 완전히 같습니다. 층으로 쌓이느냐, 그물로 얽히느냐. 그 차이 하나로 하나는 백 원짜리 연필심이 되고 하나는 캐럿당 수백만 원짜리 보석이 됩니다. 흑연에서 딱 한 층만 떼어내면 그래핀이 되는데, 두께가 원자 하나인 그 막은 강철보다 훨씬 질깁니다. 숯도, 탄소나노튜브도 모두 같은 탄소입니다.
우리 몸도 탄소로 지은 집입니다
지구의 생명체를 '탄소 기반 생명체'라고 부릅니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사람 몸에서 물을 빼고 남는 무게의 약 절반이 탄소입니다. 단백질도 탄소 사슬 위에 지어졌고, 밥과 빵을 이루는 탄수화물은 이름부터 탄소와 물이며, 지방은 긴 탄소 사슬입니다. 유전 정보를 담은 DNA조차 탄소 골격 위에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탄소를 뼈대로 삼는 물질을 통틀어 유기물이라 부르고, 그것을 다루는 학문이 유기화학입니다. 나무도 당연히 여기 속합니다. 우리가 다루는 목재라는 것은, 결국 나무가 공기에서 탄소를 꺼내어 자기 몸으로 굳혀 놓은 결과물입니다.
탄소는 사라지지 않고, 옮겨 다닙니다
여기서부터가 우리 사업과 곧장 이어집니다. 탄소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형태만 바꾸며 지구를 계속 돕니다. 머무는 곳은 크게 넷입니다.
- 대기. 이산화탄소의 모습으로 떠 있습니다. 넷 중 가장 작은 창고인데, 문제가 되는 곳도 바로 여기입니다.
- 생물과 흙. 나무와 동물, 그리고 그들이 남긴 것. 나무 한 그루는 그 자체로 탄소 창고입니다.
- 바다. 물에 녹아 있는 형태로, 대기가 품은 것의 수십 배를 담고 있습니다.
- 땅속. 석회암, 그리고 석탄과 석유. 압도적으로 큰 창고이고, 가장 오래 잠겨 있던 곳입니다.
순환은 이렇게 돕니다. 나무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내놓고, 사람은 그 산소를 마시며 살아갑니다. 한편 식물이 같은 방식으로 공기에서 붙잡아 둔 탄소는 음식을 통해 사람 몸으로 들어와, 숨을 내쉴 때 다시 이산화탄소가 되어 공기로 돌아갑니다. 죽으면 미생물이 분해해 또 공기로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분해되지 못하고 땅에 묻힌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수억 년 눌리고 익어 석탄과 석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탄소가 미움을 받게 되었나
탄소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이산화탄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지구가 우주로 내보내려는 열을 붙잡아 두는 담요 역할을 하는데, 이 담요는 원래 꼭 필요합니다. 없었다면 지구 평균기온은 영하 18도쯤이 되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담요가 두꺼워지는 속도입니다. 땅속에 갇히기까지 수억 년이 걸린 탄소를, 인간이 200년 만에 꺼내어 태우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전에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백만분율로 280 정도였는데, 지금은 420을 넘어섰습니다. 빙하에 갇힌 공기를 읽어 복원한 80만 년 기록 어디에도 이런 속도의 상승은 없습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어느 창고에서 꺼내 오느냐입니다. 석탄을 태우는 일은 3억 년 동안 잠겨 있던 창고의 문을 열어 그 안의 것을 공기로 옮기는 일입니다. 한번 나오면 되돌려 넣을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석유든, 깨끗하다고들 하는 천연가스든, 요즘 이름을 달리해 나오는 여러 대체연료든 마찬가지입니다. 태울 때 무엇이 덜 나오느냐의 차이는 있어도, 그 탄소가 땅속 창고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르지 않습니다.
나무를 태우는 일은 다릅니다. 그 탄소는 방금 전까지 공기에 있던 것이고, 나무가 자라면서 잠시 맡아 두었던 것입니다. 태우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벤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으면, 그 나무가 같은 탄소를 도로 빨아들입니다. 창고와 창고 사이를 오갈 뿐, 새로 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첫 글에서 '최근의 탄소'라 불렀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주 헷갈리는 것 하나
탄소와 이산화탄소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탄소는 원소 하나이고, 이산화탄소는 거기에 산소 두 개가 붙은 화합물입니다. 무게로 따지면 이산화탄소가 탄소의 약 3.67배입니다. 그래서 '탄소 1톤'과 '이산화탄소 1톤'은 전혀 다른 양입니다. 배출량이나 감축량을 다룰 때 이 둘을 섞으면 숫자가 세 배 넘게 어긋납니다. 보고서에 적힌 단위가 tC인지 tCO₂인지 확인하는 습관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탄소는 손이 네 개라서 무엇이든 지을 수 있는 원소이고, 그래서 생명의 뼈대이자 인류가 써 온 에너지의 실체입니다. 죄가 있다면 탄소에게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느 창고에서 꺼내 오는가에 있습니다. 땅속에 잠긴 창고를 여는 대신 공기와 숲 사이를 도는 창고를 쓰는 일 — 저희가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