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공기를 먹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나무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셔 제 몸을 만드니까요. 앞선 글에서 본 그대로, 나무의 절반은 그렇게 공기에서 온 탄소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자라는 데 탄소만 필요한 건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질소입니다. 잎을 푸르게 하고, 자라는 힘을 내는 밑천이 바로 질소이지요. 그런데 여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사방에 있는데, 먹지를 못합니다
질소는 사실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들이쉬는 공기의 거의 80%가 질소입니다. 산소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말 그대로 공기의 대부분이 질소인 셈이지요.
그런데 정작 나무는 이 질소를 먹지 못합니다. 공기 중의 질소는 두 개가 서로 아주 단단히 맞물려 있어서, 식물이 도무지 뜯어 쓸 수가 없습니다. 밥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을, 도무지 열 수 없는 통조림에 담아 둔 것과 같습니다. 눈앞에 가득한데, 굶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무는 질소를 오직 흙에서만 얻습니다. 흙 속에 녹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질소를 뿌리로 빨아들이는 것이지요. 흙의 질소가 다하면, 나무는 그만 배가 고파집니다. 우리가 밭에 비료를 주는 것도, 실은 이 질소를 채워 주려는 것입니다.
통조림을 여는 나무
그런데 그 단단한 통조림을 여는 재주를 가진 나무들이 있습니다. 콩과(豆科)에 속하는 나무들입니다.
콩과 나무의 뿌리를 파 보면, 작은 혹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습니다. 이 혹 속에는 특별한 세균이 살고 있어서, 나무와 서로 돕는 거래를 합니다. 나무는 세균에게 살 집과 먹이를 내주고, 세균은 그 대가로 공기 중의 질소를 뜯어내어 나무가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꿔 줍니다. 아무도 열지 못하던 통조림을, 이 세균이 열어 주는 것이지요.
사실 이건 나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도 공기 중의 질소를 그대로 먹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밥과 고기에서 얻는 질소도, 거슬러 올라가면 누군가 그 통조림을 열어 준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 여는 재주를 가진 것이, 바로 콩과 식물입니다.
그러니 콩과 나무는 남들이 흙에서만 찾던 질소를, 공기에서 직접 뽑아 씁니다. 스스로 비료를 만들어 먹는 셈입니다. 농부들이 예부터 땅이 지치면 콩을 심어 땅심을 돌린 것도 이 원리였습니다. 콩과 식물이 자라며 남긴 질소가, 그 땅을 다시 기름지게 했으니까요.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그 나무도
앞서 '왕이 된 나무' 이야기에서, 열대 조림의 왕이었다가 병으로 무너진 아카시아를 기억하실 겁니다. 실은 그 아카시아도 콩과였습니다. 스스로 질소를 만들어 땅을 살찌우던 나무였지요.
그래서 왕이 아카시아에서 유칼립투스로 바뀌었을 때, 조용히 잃어버린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유칼립투스는 그 통조림을 여는 재주가 없습니다. 왕이 바뀌자 땅이 서서히 메말라 간 데에는, 이런 사정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콩과를 부릅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병으로 쓰러진 그 아카시아(망기움)를 다시 심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아카시아라는 이름을 쓰지만, 형제뻘일 뿐 서로 다른 나무입니다. 우리가 눈여겨보는 것은 그 사촌 격인 다른 아카시아로, 습한 땅에도 잘 견디고, 그 왕을 무너뜨린 병에는 조금 덜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종입니다.
이 아카시아 역시 유칼립투스 못지않게 빨리 자랍니다. 그렇게 제 몫의 목재로 자라는 동안, 뿌리로는 공기에서 질소를 뽑아 땅에 보태 줍니다. 빨리 크면서 땅까지 돌보는 셈이지요. 그러면서도 콩과 특유의 그 재주는 고스란히 지녔습니다.
이 나무를 주력인 유칼립투스와 나란히 섞어 심으면, 두 나무가 서로를 돕습니다. 아카시아는 공기에서 질소를 뽑아 땅에 보태고, 그 기름진 땅에서 유칼립투스가 더 잘 자랍니다. 키 큰 유칼립투스는 바람을 막아 주고, 그 아래에서 아카시아가 땅을 돌봅니다. 한 종만 빼곡히 심었을 때 찾아오던 병도, 이렇게 서로 다른 나무가 섞여 있으면 쉽게 번지지 못합니다.
'왕이 된 나무'의 끝에서 우리가 남긴 다짐, 한 나무에 모든 것을 걸지 않겠다는 그 말이 실제로 이렇게 모양을 갖춥니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 나무와 잘 자라는 나무를 나란히 두는 것. 그 시작에, 공기를 먹는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는 공기에서 탄소는 얻지만, 정작 공기의 80%인 질소는 먹지 못합니다. 너무 단단히 맞물려 있어 뜯어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음식에서 얻는 질소도 거슬러 오르면 누군가 그 통조림을 열어 준 것입니다. 그 여는 재주를 가진 것이 콩과 식물이지요.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그 아카시아도 콩과였습니다. 우리는 습지에 강하고 그 병에는 덜 시달리는 사촌 격 아카시아를, 빨리 자라면서 땅도 살찌우는 그 나무를 유칼립투스와 섞어 심어, 공기에서 질소를 뽑는 재주를 숲으로 다시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