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2년 영국 런던. 갓 세워진 왕립학회에 해군 조선위원회가 다급한 질문을 보냅니다. "배를 지을 목재가 부족합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질문을 받아 든 사람이 존 이블린(John Evelyn, 1620–1706)이었습니다. 학회의 창립 회원이자 나무를 사랑한 학자였지요. 그가 그해 10월 학회에서 발표하고 1664년 책으로 펴낸 것이 임업의 고전 『실바(Sylva)』입니다.
나무 없이는 살 수 없다."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영국에서 나무는 정말로 금보다 귀했습니다. 그리고 이 위기가 어떻게 풀렸는가는, 인류가 겪은 첫 번째 대규모 에너지 전환의 해부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해부를 해 보려 합니다. 400년 전의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수요는 폭발하고, 공급은 느렸다
당시 영국에서 나무는 연료이자 재료이자 전략 물자였습니다. 취사와 난방, 제철, 유리 제조,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造船). 나무 없이 돌아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6세기 들어 수요 곡선이 수직으로 섰습니다. 잉글랜드 인구는 한 세기 만에 약 200만에서 400만으로 두 배가 되었고, 런던은 12만에서 20만으로 불어났습니다. 여기에 대항해시대의 군비 경쟁이 겹칩니다. 대형 군함 한 척에 참나무 수천 그루가 들어갔습니다.
공급 쪽은 어땠을까요. 여기에 온대림의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사계절이 뚜렷한 곳의 나무는 겨울마다 형성층이 멈춰 나이테를 새긴다고 했지요. 한 해의 상당 기간을 쉰다는 것은, 곧 연간 생장량이 작다는 뜻입니다. 영국의 참나무가 조선재로 쓸 굵기에 이르려면 백 년 안팎이 걸렸습니다. 회임 기간이 한 세기에 달하는 자산이었던 셈입니다.
수요는 한 세대 만에 두 배가 되는데 공급은 백 년의 시차를 두고 반응하니,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국가의 개입, 그리고 실패
정부는 개입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도 높게.
엘리자베스 1세 치세에만 이 연료 위기를 다루려는 법안이 의회에 서른 건 넘게 올라왔습니다. 벌채 제한, 땔감 상인 처벌, 목재 수출 금지. 제임스 1세는 유리 제조에 목재 대신 석탄만 쓰도록 명령했고, 두 군주 모두 런던의 확장을 억제하려 했습니다. 도시가 커질수록 목재 수요가 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이 개입들은 대체로 실패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인구 증가라는 근본 동인을 건드리지 못한 채, 가격과 유통만 규제했기 때문입니다. 공급의 회임 기간이 백 년인 자산에 대해, 단속으로 수요를 억누르는 것은 애초에 작동할 수 없는 처방이었습니다.
이블린의 처방은 달랐습니다. 그는 규제가 아니라 공급 자체를 늘리라고 했습니다. 베는 것을 막는 데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시 심으라는 것. 이는 지속가능한 임업이라는 개념을 200년 이상 앞선 발상이었습니다. 『실바』는 귀족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는 백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게 한 공로를 인정받습니다.
대체재의 조건 — 왜 하필 석탄이었나
그럼에도 위기를 실제로 끝낸 것은 조림이 아니라 석탄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석탄은 오랫동안 천대받던 연료였습니다. 매캐한 연기와 유황 냄새 때문에, 목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석탄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석탄에게는 목재가 갖지 못한 결정적 강점이 있었습니다. 에너지 밀도입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밀도 높은 나무가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열을 담는다고 했지요. 석탄은 그 논리의 극단입니다. 수억 년 전 식물이 땅속에서 압축되며 탄소만 남긴 결정체이니까요. 같은 부피로 목재보다 훨씬 큰 화력을 냈고, 운반 효율도 좋았습니다.
여기에 결정적 조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재고가 이미 땅속에 축적되어 있었다는 것. 목재는 심어서 백 년을 기다려야 얻지만, 석탄은 파내기만 하면 됐습니다. 회임 기간이 백 년인 자산과, 회임 기간이 사실상 영(零)인 자산의 경쟁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목재는 정말 고갈되었나
여기서 이 이야기의 가장 흥미로운 논점이 나옵니다. 오늘날 경제사학계에는 이런 재해석이 있습니다. 당시 영국의 '목재 기근'은 물리적 고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땅은 있었고, 이블린의 말대로 가꿨다면 숲을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1600년에서 1750년 사이의 가격대에서 연료용 목재 생산은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심는 대신 캐는 쪽을 택했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기다리는 비용이 캐내는 비용보다 비싸졌기 때문입니다. 목재는 토지와 노동을 백 년간 묶어 두는 자산인데, 같은 토지를 양을 치는 데 쓰면 당장 수익이 났습니다. 게다가 목재를 숯으로 만들려면 벌채·운반·탄화·재운반이라는 노동이 겹겹이 들었습니다. 반면 석탄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며 값이 계속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에너지 전환의 제1원리가 도출됩니다.
다른 것이 더 싸질 때 바뀝니다.
석기시대가 돌이 떨어져서 끝난 것이 아니듯, 목재의 시대도 나무가 사라져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대가격이 역전되었을 뿐입니다.
전환의 귀결 — 그리고 제번스의 역설
이 전환은 곧 문명의 형태를 바꿉니다. 1700년대에 석탄의 열을 기계 동력으로 변환하는 장치, 곧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숫자로 보면 그 속도가 실감납니다. 세계 1차에너지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1800년 1.7%에서 1900년 47.2%로 뛰었습니다. 한 세기 만에 세계 에너지의 절반이 석탄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얄궂은 법칙이 등장합니다. 19세기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석탄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기술이 나올수록 오히려 석탄 소비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효율이 좋아지면 단위 서비스당 비용이 낮아지고, 싸지면 수요가 팽창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제번스의 역설'이라 불리는 이 통찰은, 효율 개선만으로는 총소비를 줄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난 250년간 화석연료 수요는 약 2,000배로 늘었습니다.
굴뚝이 남긴 것 — 80만 년의 기록과 200년의 예외
그리고 이 전환은 대기에도 기록을 남겼습니다.
남극 빙하 코어를 파 내려가면, 과거 공기가 기포로 갇혀 있어 그 시절 대기 조성을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지난 80만 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180ppm에서 300ppm 사이를 오르내렸습니다. 빙하기에는 180ppm 안팎으로 떨어지고, 따뜻한 간빙기에는 280~300ppm까지 올랐습니다. 이 왕복이 약 10만 년 주기로 반복되었지요. 그리고 이 80만 년 동안, 농도가 300ppm을 넘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시작된 현재의 간빙기, 곧 홀로세에는 농도가 약 280ppm에서 안정되었습니다. 7천 년 전부터 산업화 직전까지 20ppm가량이 완만히 올랐을 뿐, 수천 년간 잔잔한 고원이었습니다. 인류 문명 전체가 이 안정된 280ppm 위에서 지어졌습니다.
그 고원이 깨진 것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해 온 그 굴뚝에서였습니다. 산업화 이전 약 280ppm이던 농도는 오늘날 420ppm을 넘어섰습니다.
인류는 이백 년 만에 해냈습니다.
최근 60년의 증가 속도는 지질 기록에 남은 자연적 증가보다 약 100배 빠릅니다. 80만 년의 기록에서 이 200년은 명백한 예외입니다.
400년 뒤, 역방향의 전환
그리고 지금, 화살표가 반대로 돌고 있습니다. 그때는 목재에서 석탄으로 갔고, 지금은 석탄에서 다시 목재로 돌아옵니다. 우드펠릿이 바로 그 되돌아온 나무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번 전환의 동인도 400년 전과 같은 구조라는 점입니다. 고갈이 아니라 상대가격입니다. 석탄은 여전히 땅속에 많습니다. 다만 그 값에 이제 '보이지 않는 비용'—대기에 탄소를 더하는 비용—이 계상되기 시작했습니다. 탄소가격, 배출권, 재생에너지 의무. 이런 제도들은 결국 그 비용을 장부에 올리는 장치이고, 그 장부가 바뀌면 저울이 기웁니다. 400년 전 석탄을 불러온 것도 장부였고, 지금 나무를 다시 부르는 것도 장부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그때와 달라야 합니다. 17세기 영국이 위기에 빠진 진짜 이유는 나무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쓰기만 하고 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임 기간 백 년짜리 자산을 재고처럼 소진했으니 무너질 수밖에요.
우리가 짧은 회전의 조림지를 설계하고, 벤 자리에 반드시 다음 나무를 심으며, 베는 양보다 심는 양을 많게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무를 재고가 아니라 흐름으로 다루는 것. 이블린이 1662년 왕립학회에서 했던 그 말—베지만 말고 다시 심으라—이, 400년을 건너 오늘 우리 사업 계획서의 첫 줄인 셈입니다.
나무가 금보다 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은 지나간 옛날이 아니라, 나무의 값을 제대로 매기는 법을 우리가 이제야 다시 배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1662년 영국 해군의 목재 부족 문의에 존 이블린은 『실바』로 답했습니다—베지만 말고 다시 심으라고. 당시 수요는 한 세대에 두 배가 되는데 온대 참나무는 조선재가 되기까지 백 년이 걸려, 구조적 공급 지연이 가격 폭등을 낳았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치세의 서른 건 넘는 법안은 근본 동인을 못 건드려 실패했고, 위기를 끝낸 것은 에너지 밀도가 높고 회임 기간이 없는 석탄이었습니다. 다만 경제사학계는 이를 물리적 고갈이 아니라 상대가격의 역전으로 봅니다—연료는 바닥나서가 아니라 다른 것이 싸질 때 바뀝니다. 석탄 비중은 1800년 1.7%에서 1900년 47.2%로 뛰었고, 제번스의 역설대로 효율 개선은 소비를 되레 늘렸습니다. 빙하 코어를 보면 지난 80만 년간 CO₂는 180~300ppm을 오갔을 뿐 300ppm을 넘은 적이 없고 홀로세엔 280ppm에서 잔잔했는데, 산업화 이후 420ppm을 넘었습니다—자연이 수만 년에 하던 일을 이백 년 만에 한 것입니다. 지금의 역방향 전환도 같은 구조입니다. 석탄이 고갈돼서가 아니라 탄소의 '보이지 않는 비용'이 장부에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다만 17세기의 실패는 나무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심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나무를 재고가 아니라 흐름으로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