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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쉽게 설명하는 시리즈 · 17

'클론'은 원래
나뭇가지라는 뜻입니다

2026. 09 · PT. INKO NATURE ENERGY

클론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 유리관, 복제양 돌리 같은 것들일 겁니다. 어딘가 서늘하고 인공적인 느낌이지요. 그런데 이 단어의 고향은 실험실이 아닙니다. 밭입니다.

잔가지라는 뜻의 그리스말

1903년, 미국의 식물생리학자 허버트 웨버가 새로운 낱말 하나를 제안합니다. 씨앗을 거치지 않고 꺾꽂이나 접목, 구근으로 불려 낸 식물 무리를 부를 말이 필요했거든요. 그가 고른 것이 그리스말 클론(κλών)이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잔가지'입니다. 더 정확히는 번식시키려고 꺾어 낸 가지 한 토막을 가리키는 말이었지요.

웨버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런 식물들은 보통 의미의 개체가 아니라, 같은 한 개체가 옮겨 심긴 부분들이라고요. 가지를 꺾어 심으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 원래 그 나무가 한 조각 더 자리를 옮긴 셈이라는 겁니다.

복제양 돌리는 그로부터 93년 뒤인 1996년에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양보다 나무가 훨씬 먼저 쓰던 말이었습니다.

클론은 첨단 기술의 이름이 아니라,
꺾어 낸 나뭇가지의 이름이었습니다.

씨앗은 부모를 닮지 않습니다

그럼 사람들은 왜 굳이 씨앗을 놔두고 가지를 꺾었을까요.

기원전 300년 무렵, 그리스의 학자 테오프라스토스가 남긴 문장에 답이 있습니다. 그는 사과나무를 두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씨앗에서 난 사과나무는 열등한 것을 내놓는다 — 달지 않고 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접을 붙인다.

이천삼백 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맛있는 사과의 씨앗을 심어도 맛있는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요.

이유는 씨앗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있습니다. 씨앗에는 암수의 형질이 섞여 들어갑니다. 사람도 형제끼리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듯이, 씨앗에서 나온 나무들은 제각각입니다. 부모만 한 것도 있고, 훨씬 못한 것도 있지요.

그러니 맛있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어렵게 찾아냈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씨앗을 심지 말고, 그 나무의 가지를 잘라 옮기는 것. 오늘 우리가 먹는 후지든 홍옥이든, 같은 이름의 사과나무는 전부 최초의 그 한 그루에서 가지를 타고 퍼져 나온 것들입니다. 사과 한 품종은 사실 한 그루의 나무인 셈이지요.

사천 년 전의 점토판

이 기술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땅속에서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마리 유적에서 나온 쐐기문자 점토판에는 포도 접수를 들여왔다는 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기원전 1800년 무렵, 지금으로부터 사천 년 가까이 전의 일입니다.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오래된 흔적이 나오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도 접목을 논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나무가 먼저 재배되었는가입니다.

무화과, 포도,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 — 이들이 가장 먼저 사람 손에 들어온 과일나무들입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지를 꺾어 꽂으면 뿌리가 잘 납니다. 그래서 좋은 나무를 발견하면 곧바로 불려 낼 수 있었지요.

반면 사과, 배, 자두는 늦었습니다. 가지를 꽂아도 뿌리가 잘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들을 길들이려면 다른 재주가 필요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접목입니다. 뿌리를 못 내리면, 이미 뿌리내린 다른 나무에 얹어 붙이면 된다는 발상이었지요.

말하자면 인류는 사과를 갖기 위해 접목을 발명한 셈입니다.

알고 보면, 집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짐작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클론은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하고 있습니다.

화분의 가지를 잘라 물컵에 꽂아 두면 며칠 뒤 하얀 뿌리가 나옵니다. 그것이 클론입니다. 감자를 심을 때 씨앗이 아니라 눈이 붙은 감자 조각을 묻지요. 마늘도 씨앗이 아니라 쪽을 심습니다. 고구마는 순을 잘라 꽂고, 딸기는 기어 나온 줄기가 닿은 자리에서 새 포기가 됩니다.

전부 클론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마당에서 하던 그 일이, 웨버가 이름 붙인 바로 그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씨가 아예 없습니다. 씨가 없으니 번식할 방법도 없지요. 세계의 바나나 농장은 전부 뿌리에서 올라온 새끼 포기를 옮겨 심어 유지됩니다. 바나나를 먹는다는 것은, 사실상 한 그루의 바나나를 나눠 먹는 것에 가깝습니다.

자연도 스스로 합니다. 대나무 숲 하나가 알고 보면 땅속줄기로 이어진 한 개체인 경우가 많고, 미국의 어느 사시나무 군락은 수만 그루가 한 뿌리에서 나온 단일 개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천 년이 남긴 경고

이 오래된 기술에는 그림자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똑같다는 것은 약점도 똑같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십 세기 중반까지 세계인이 먹던 바나나는 '그로미셸'이라는 품종이었습니다. 지금 것보다 달고 향이 좋았다고 하지요. 그런데 곰팡이병 하나가 돌자, 전 세계 농장이 차례로 무너졌습니다. 모두 같은 클론이었으니 한 곳이 걸리면 다음도 걸렸습니다. 그로미셸은 상업적으로 사라졌고, 사람들은 병에 견디는 다른 품종으로 갈아탔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캐번디시입니다. 그리고 캐번디시도 지금 새로운 곰팡이에 쫓기고 있습니다.

더 아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1840년대 아일랜드의 대기근입니다. 당시 아일랜드는 소수의 감자 품종에 식량을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는데, 감자 역시 클론이라 유전적으로 거의 같았습니다. 역병이 돌자 막아설 것이 없었고, 백만 명이 굶어 죽고 백만 명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클론은 가장 좋은 것을 완벽하게 되풀이하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되풀이한다는 말에는, 그 하나의 약점까지 빠짐없이 되풀이한다는 뜻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잔가지 한 토막의 뜻

돌이켜 보면 이 이야기는 꽤 근사한 데가 있습니다.

인류는 사천 년 전부터 좋은 나무를 만나면 가지를 꺾어 옮겨 심었습니다. 그 가지가 뿌리를 내리면, 그 나무는 죽지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테오프라스토스가 본 사과나무도, 점토판에 적힌 포도나무도 그렇게 오늘까지 왔습니다. 웨버는 그 오래된 지혜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고, 그가 고른 말이 하필 '잔가지'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사천 년은 또 하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장 좋은 하나를 되풀이하되, 전부를 그 하나로 채우지는 말라는 것. 바나나와 감자가 치른 값이 그 수업료였습니다.

나무를 심는 일에는 이 두 가지가 언제나 함께 따라다닙니다. 좋은 것을 이어 가려는 마음과, 전부를 걸지는 않으려는 조심 말입니다. 잔가지 한 토막이라는 그 소박한 이름 안에, 사실은 그 두 가지가 다 들어 있습니다.

In short

'클론'은 원래 '잔가지'라는 뜻의 그리스말이었습니다. 인류는 사천 년 전부터 좋은 나무를 만나면 가지를 꺾어 이어 왔지요. 씨앗은 부모를 닮지 않지만, 가지는 그 나무를 그대로 되풀이하니까요. 다만 똑같다는 것은 약점도 똑같다는 뜻입니다. 가장 좋은 하나를 이어 가되, 전부를 그 하나로 채우지는 말 것 — 바나나와 감자가 대신 치러 준 수업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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