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조림지에 한 종류의 나무만 심지 않고, 성질이 다른 여러 나무를 섞어 심으려 합니다. 오늘은 왜 그렇게 하는지를 실화 한 편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인도네시아 조림의 역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고, 우리가 왜 지금처럼 숲을 설계했는지를 이보다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도 없거든요.
1막 이런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런 나무가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심은 지 5~6년이면 벌써 베어 쓸 만큼 굵게 자랍니다. 다른 나무들은 엄두도 못 내는 척박한 산성 토양, 비 오면 벌겋게 쓸려 내려가는 그런 땅에 심어도 아랑곳없이 뿌리를 박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나무는 뿌리에 사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공기 중의 질소를 스스로 붙잡습니다. 쉽게 말해, 자기가 자랄 거름을 자기가 만드는 나무입니다. 비료를 덜 줘도 잘 자라고, 목질은 펄프와 종이의 훌륭한 원료가 되고요.
이쯤 되면 조림하는 사람에게는 꿈의 나무입니다. 빨리 자라고, 아무 땅에서나 살고, 땅까지 기름지게 만들어 주니까요. 실제로 이 나무는 1980년대부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산을 빠르게 뒤덮었습니다. 20년 넘게, 100만 헥타르가 넘는 땅에서 말이지요.
이 나무의 이름은 아카시아 망기움(Acacia mangium). 열대 조림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이 왕조가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막 땅속에서 올라온 그림자
끝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시작됐습니다.
같은 땅에 아카시아를 베고 또 심고, 2세대, 3세대를 반복하던 어느 시점이었습니다. 나무들이 이유 없이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잎이 누렇게 뜨고, 가지가 마르고, 어제까지 멀쩡하던 나무가 통째로 죽어 넘어갔습니다. 뿌리를 파보면 시커멓게 썩어 있었고요.
범인은 둘이었습니다. 하나는 세라토시스티스(Ceratocystis)라는 곰팡이입니다. 나무의 물관을 틀어막아 안에서부터 말려 죽이는 시들음병이지요. 다른 하나는 가노데르마(Ganoderma), 뿌리를 아래에서부터 썩혀 들어가는 뿌리썩음병이었습니다. 여기에 원숭이와 다람쥐까지 가세해 나무껍질을 파먹었고, 그 상처는 고스란히 곰팡이가 들어오는 문이 되었습니다.
숫자가 재앙을 증언합니다. 남부 수마트라에서 아카시아 조림의 생산성은 1헥타르당 연 22~35세제곱미터에서 15세제곱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절반 이하로요. 한때 꿈의 나무였던 왕은, 이제 심으면 심을수록 손해를 보는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이 병이 한번 땅에 자리를 잡으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뿌릴 약도, 갈아엎을 방법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조림회사들은 하나둘 아카시아를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20년의 왕조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곰팡이 앞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3막 급하게 불려 나온 후계자
왕이 쓰러지자, 사람들은 절박하게 다음 나무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무대 위로 불려 나온 것이 유칼립투스 펠리타(Eucalyptus pellita)였습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펠리타가 아카시아보다 잘나서 왕위에 오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나무가 선택된 이유는 단 하나, 그 곰팡이를 아카시아보다 조금 더 잘 견뎠기 때문이었습니다. 펠리타도 그 병에 완전히 끄떡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카시아보다는 버텼고, 녹병과 잎마름병에는 저항성이 있었으며, 목재와 펄프 품질도 좋았습니다.
사실 펠리타는 1990년대 초에 이미 수마트라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다만 조연이었지요. 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안에는 굳이 주목받을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아카시아가 무너진 2000년대 중반, 무대의 조명이 갑자기 이 조연에게로 쏟아졌습니다. 후계자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기보다, 다른 후보가 다 쓰러진 자리에 마침 남아 있던 쪽에 가까웠습니다.
4막 진짜로 강해지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펠리타는 그저 '운 좋게 살아남은 대타'로 기억됐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이 나무는 사람의 손을 빌려 진짜로 강해졌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연구소와 조림회사들은 펠리타 육종 프로그램을 세대에 걸쳐 이어갔습니다. 수천 그루를 심어 그중 가장 잘 자라고 병에 강한 개체만 골라내는 작업을 반복하고, 그렇게 뽑힌 최고의 나무를 복제해 균일한 우량 클론으로 심는 방식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촌 격인 다른 유칼립투스들과 교배시켜, 장점만 골라 모은 교잡종까지 만들어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어느 시험에서는 잘 만든 교잡종이 순종 펠리타보다 세 배 넘게 빨리 자랐습니다. 자바에서 선발된 우수 클론은 이미 개량된 묘목보다도 더 좋은 성적을 냈고요.
이제 펠리타는 '급한 대로 쓰는 대타'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눈과 손을 거쳐 다듬어진, 명실상부한 주력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왕조가 완전히 교체된 것입니다.
5막 왕관의 무게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조용한 경고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펠리타 역시 그 곰팡이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아카시아보다 잘 견딜 뿐입니다. 그리고 이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펠리타 조림지에서도 세라토시스티스가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서늘한 사실은, 이 병원균이 새로운 나무에 적응하며 진화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오늘 펠리타가 견디는 병을, 내일의 펠리타는 못 견딜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게다가 아카시아에서 유칼립투스로 갈아탔다는 것은, 질소를 스스로 만들던 나무에서 그러지 못하는 나무로 바꿨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왕이 바뀌자 땅은 조용히 메말라갔고, 사람이 짊어져야 할 관리의 부담은 그만큼 늘어났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아카시아를 무너뜨린 것과 똑같은 이치가 펠리타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한 종류의 나무를 같은 땅에 끝없이 반복해 심으면, 그 나무만 노리는 적이 반드시 찾아온다 — 이것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입니다. 지금의 왕도, 왕관의 무게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맺음 그래서 우리는
이 역사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 첫째, 한 나무에 모든 것을 걸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종류의 나무만 빼곡히 심는 대신,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여러 나무를 함께 심으려 합니다. 한 종이 병에 걸려도 숲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어떤 나무는 땅을 기름지게 하고 어떤 나무는 그 힘으로 잘 자라도록,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메우는 숲을요.
- 둘째, 지금 강한 나무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량된 우량 품종을 신중히 고르고, 병해가 찾아오지 않는지 꾸준히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 셋째, 어떤 품종을 고르느냐가 절반입니다. 같은 펠리타라도 어떤 나무에서 골라낸 씨앗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묘목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신중을 기합니다.
왕은 완벽해서 오래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언젠가 무너질 수 있음을 아는 왕이 오래갑니다. 우리는 숲을 그렇게 대하려 합니다. 한 종류의 왕을 세우는 대신, 서로 기대어 함께 오래갈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는 쪽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