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나무는 남의 나라에서 키우면서, 태우기는 내 나라에서 태운다. 그럼 결국 내 나라 공기만 나빠지는 것 아니냐"고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반가운 질문입니다. 얼버무리지 않고 정면으로 답할 수 있어야, 우리가 하는 일이 떳떳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하나씩 짚어 보려 합니다.
먼저, 맞는 말부터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무언가를 태우면 그 자리의 공기에 영향이 간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우드펠릿도 예외가 아닙니다. 태우면 연소가 일어나고, 아주 깨끗하게 관리해도 배출이 완전히 0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동네에서 태우는데 어떻게 깨끗하다고만 하느냐"는 지적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흔히 두 가지 서로 다른 문제가 하나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 둘을 나누어 보면, 질문의 답이 또렷해집니다.
뒤섞인 두 가지: 탄소와 미세먼지
하나는 이산화탄소(CO₂)입니다. 지구를 데우는 온실가스이지요. 다른 하나는 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물질입니다. 우리가 숨 쉬는 그 자리의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자주 한 덩어리로 묶여 오해를 낳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뒤섞임이, "내 나라, 남의 나라" 이야기가 나오는 뿌리이기도 합니다. 하나씩 나누어 보겠습니다.
탄소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먼저 탄소입니다. "왜 내 나라에서 배출하느냐"는 물음에는 중요한 오해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탄소는 그 동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에서 행동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미세먼지는 작은 알갱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도, 엄연히 무게를 가진 고체 알갱이지요. 그래서 공기 중에 떠 있다가도 며칠이면 땅으로 가라앉거나 비에 씻겨 내려옵니다. 멀리 가지 못하고 나온 곳 근처에 머뭅니다. 굴뚝이 있는 그 동네의 공기가 나빠지는 까닭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알갱이가 아니라 기체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기체 분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눈에는 잔잔해 보이는 공기 속에서도, 수없이 많은 기체 분자들이 사방으로 초속 수백 미터의 빠르기로 날아다니며 쉼 없이 서로 부딪칩니다. 이 끊임없는 부딪침 때문에, 한곳에 모여 있던 기체는 저절로 사방으로 번져 나갑니다. 진한 곳에서 옅은 곳으로, 틈이 있으면 어디로든 파고들며 고르게 퍼집니다. 이것을 '확산'이라고 합니다.
물에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을 떠올려 보십시오. 젓지 않고 가만히 두어도, 잉크는 시간이 지나면 물 전체로 번져 고르게 물듭니다. 물 분자와 잉크 분자가 쉼 없이 움직이며 섞이기 때문입니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도 똑같습니다. 여기에 지구를 끊임없이 도는 바람까지 더해지면, 어느 한 곳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도 머잖아 지구의 대기 전체로 퍼집니다.
이것은 짐작이 아니라 측정된 사실입니다. 과학자들이 해수면에서 산꼭대기까지, 북극에서 적도까지, 전 세계 수십 곳에서 공기를 재어 보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어디서나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과학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아예 '잘 섞이는 기체(well-mixed gas)'라고 부릅니다. 내 나라 하늘의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 반대편 하늘의 농도가 거의 같다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해의 뿌리가 있습니다. 미세먼지는 나온 자리에 쌓이니 "어디서 배출했느냐"가 중요하지만, 이산화탄소는 어디서 나오든 지구 전체에 고르게 섞이니 "어디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지구 전체에 얼마나 쌓였느냐"만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내 나라에서 배출하니 내 나라만 손해"라는 셈은, 이산화탄소에 관한 한 성립하지 않습니다. 탄소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드펠릿에서 나오는 탄소는, 원래 나무가 자라며 공기에서 빨아들였던 바로 그 탄소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나무가 자라며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내 나라에서 그 나무를 태우며 도로 내놓고, 다시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또 흡수합니다. 지구 전체로 보면, 공기 중의 탄소 총량은 늘지 않습니다. 돌고 도는 것이지요.
반면 석탄은 다릅니다. 수억 년 동안 땅속에 갇혀 있던 탄소를 새로 꺼내어 태웁니다. 원래 대기에 없던 탄소가 새로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드펠릿과 석탄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미세먼지는?
이제 두 번째, 그 자리의 공기 문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깨끗한 공기에 펠릿을 새로 태우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발전소는 지금 이미 석탄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진짜 선택지는 "펠릿을 태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계속 석탄을 태우느냐, 아니면 펠릿으로 바꾸느냐"입니다. 비교해야 할 상대는 맑은 하늘이 아니라, 지금 석탄이 타고 있는 바로 그 굴뚝입니다.
그리고 이 비교에서는 우드펠릿이 석탄보다 낫습니다. 우드펠릿은 석탄보다 황 성분이 훨씬 적습니다. 산성비와 미세먼지의 주범인 황산화물이 그만큼 덜 나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재의 양입니다. 석탄은 태우고 나면 무게의 10퍼센트에서 많게는 20퍼센트가 재로 남습니다. 반면 좋은 우드펠릿의 재는 1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품질이 높은 것은 0.5퍼센트, 0.7퍼센트에 그치기도 합니다. 백 자루를 태워도 재는 한 자루가 채 되지 않는 셈입니다.
게다가 이 적은 재마저도 성격이 다릅니다. 석탄재는 중금속이 섞여 처리하고 묻어야 하는 폐기물이지만, 우드펠릿의 재는 나무가 흙에서 빨아올렸던 칼슘·칼륨·인 같은 미네랄입니다. 그래서 밭이나 정원에 비료로 되돌려 줄 수도 있습니다. 나무가 흙에서 받은 것을,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지요. 버려야 할 폐기물이 아니라, 흙으로 돌아가는 양분인 셈입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펠릿이 내 나라 공기를 더럽힌다"가 아니라, "펠릿이, 지금 타고 있는 석탄보다 내 나라 공기를 덜 더럽힌다"입니다.
왜 하필 내 나라에서 태우느냐면
마지막으로, "왜 나무는 남의 나라에서 키우고 태우기는 내 나라에서 하느냐"는 물음 자체에 답하겠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왜 내 나라에서 에너지를 쓰느냐"는 물음과 같습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라도 국내에 연료가 될 자원이 넉넉하지 않으면, 석유도 석탄도 가스도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 씁니다. 펠릿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에서 그 연료를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우드펠릿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같은 수입 연료라도, 탄소가 돌고 돌아 순환하고, 그 자리의 공기도 석탄보다 덜 더럽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연료를, 가장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대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 나무를 왜 내 나라에서 태우냐"는 물음에는, 사실 두 가지 걱정이 섞여 있었습니다. 탄소와 미세먼지입니다. 탄소는 어디서 나오든 지구 전체에 고르게 퍼지니, "어디서"가 아니라 "얼마나"가 문제입니다. 그마저도 나무가 자라며 도로 흡수해, 돌고 됩니다. 미세먼지는 그 자리의 문제가 맞지만, 우리가 견주어야 할 상대는 맑은 하늘이 아니라 지금 타고 있는 석탄이고, 우드펠릿은 그 석탄보다 깨끗합니다. 우리는 우드펠릿이 완벽하게 깨끗한 연료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배로 실어 오는 동안 탄소가 들고, 태울 때 나오는 것이 아예 없지도 않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나은 쪽을, 더 잘 해내려 할 뿐입니다. 부풀리지도, 감추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